"... 금발의 잉에, 잉에보르크 홀름! 높다랗고 뾰족한 여러 겹의 고딕식 아치들을 이룬 지붕 아래에 우물이 있던 저 광장 가(街)에 살던 의사 홀름의 딸! 그녀가 바로 토니오 크뢰거가 열여섯 살 때 사랑했던 사람이었다. 

어쩌다가 그렇게 되었던가? 그전에도 이미 그는 수백 번이나 그녀를 보아왔었다. 그런데 어느 날 저녁, 그는 그 어떤 불빛 아래에 있던 그녀를 보았던 것이다. 그녀는 어느 친구와 얘기를 나누면서 오만한 투로 깔깔 웃으면서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한 손을- 유별나게 섬세하지도 않고 유별나게 고상하지도 않은, 흔히 볼 수 있는 소녀의 손을- 뒷머리께로 가져갔는데, 이떄 그는 반투명한 천으로 된 그녀의 소매가 어깨 쪽으로 흘러내려 그녀의 팔꿈치가 드러나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 그러나 그는 그다지도 많은 상심과 그리움으로 가득 차 있는 자신의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왜, 무엇때문에 그는 여기에 와 있는 것일까? 왜 그는 자기 방 창가에 앉아 슈토름의 "임멘호(湖) Immensee" 를 읽으며 때떄로 눈을 들어, 해묵은 호두나무가 육중하게 가지 소리를 내고 있는 저녁 무렵의 정원을 내다보고 있지 않은가? 그곳이 그가 있을 자리인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야 춤을 추면서 마음껏 활기와 재치를 부리라지! 아니, 아니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있을 자리는 여기다. 여기서 그는 자신이 잉에의 근처에 있음을 알 수 있으니까.... 너 금발의 잉에여! 웃고 있는 네 길쭉한 푸른 두 눈이라니! "임멘호 (湖)" 를 읽지 않고, 그런 작품을 쓰려는 시도를 결코 하지 않는 사람만이 너처럼 그렇게 아름답고 명랑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것이 슬픈 일이지!...
... 내 너희들을 잊은 적이 있었던가? 하고 그가 물었다. 아니, 결코 없었다! 너 한스도 잊은 적이 없고, 너 금발의 잉에도 결코 잊은 적이 없어! 정말이지 내가 작품을 써서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바로 너희들이었어. 그리고 내가 박수갈채를 받을 떄, 난 남몰래 내 주위를 살펴보곤 했지, 그중에 너희들이 참석해 있나 하고. 한스 한젠, 네 집 정원 문 앞에서 약속한 대로 너 이제 (쉴러 Schiller 의) "돈 카를로스"를 읽었느냐? 읽지 마라! 난 너한테 더 이상 그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외로워서 우는 왕이 너에게 무슨 상관이겠니? 넌 우울한 시 나부랭이를 보다가 네 밝은 눈을 흐리게 하거나 어리석은 꿈에 잠기게 해서는 안 된다. 너처럼 되고 싶구나! 다시 한번 시작하여, 너처럼 올바르고 즐겁고 순박하게, 규칙과 질서에 맞게, 하느님과 세계의 동의를 얻으면서 자라나서, 악의없고 행복한 사람들한테 사람을 받으면서, 잉에보르크 홀름, 너를 아내로 삼고, 한스 한젠, 너와 같은 아들을 두고 싶구나! 인식해야 하고 창작해야 하는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저주로부터 벗어나 평범한 행복 속에서 살고 사랑하고 찬미하고 싶구나! 다시 한번 시작한다? 그러나 아무 소용도 없으리라. 다시 이렇게 되고 말 것이리라...
... 지나간 며칠 내내 그는 이 감정의 훈향(薰香)과 쓰린 자극을 아련하게 느껴왔는데, 이제 이 감정이 다시금 그를 찾아와 한껏 달콤한 억지를 부리는 것이다. 이게 무슨 감정이더라? 동정? 애정? 질투, 자기 경멸? <숙녀들의 작은 물레방아!> 금발의 잉에여, 너는 웃었지? 내가 <숙녀들의 작은 물레방아> 를 추어 그다지도 비참한 웃음거리가 되었을 때 너는 날 비웃었지? 그런데 이제 내가 제법 유명한 사람이 된 오늘에도 넌 날 비웃겠느냐? 그렇다. 너는 그럴 것이다. 그리고 그러는 것이 또 너무나도 댱연하다. 
설령 내가 아홉 곡의 교향곡과 (쇼펜하우어 Schopenhauer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와 (미켈란젤로 Michelangelo의) "최후의 심판"을 순전히 혼자서 이룩해 내었다손 치더라도, 너는 영원히 비웃을 권리가 있다...
... 그렇습니다, <삶은> 정신과 예술의 영원한 대립 개념으로서 우리들과 같은 비정상적인 인간들에게는 피비린내 나는 위대성과 거친 아름다움의 환상으로 나타나거나 비정상적인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정상적이고 단정하고 사랑스러운 것이야말로 우리들이 동경하는 나라이며, 그것이 바로 유혹적인 진부성 속에 자리잡고 있는 삶인 것입니다! 친애하는 리자베타, 세련되고 상궤를 벗어난 것, 악마적인 것은 궁극적 목표로 삼고 그것에 깊이 열중하는 자는 아직 예술가라 할 수 없습니다. 악의 없고 단순하며 생동하는 것에 대한 동경을 모르는 자, 약간의 우정, 헌신, 친밀감, 그리고 인간적인 행복에 대한 동경을 모르는 자는 아직 예술가가 아닙니다. 평범성이 주는 온갖 열락 (悅樂)을 향한 은밀하고 애타는 동경을 알아야 한단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 예술가들 자신은 그 무엇인가 인간 외적인 것, 비인간적인 것이 되지 않으면 안 되며, 우리들 자신은 인간적인 것과 이상하게도 동떨어지고 무관한 관계에 빠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지요... 말하자면 그 어떤 인간적 빈곤화와 황폐화를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어쩄든 확실한 것은 건강하고도 힘찬 감정은 몰취미하다는 사실입니다. 예술가가 인간이 되고 느끼기 시작하면 그는 끝장입니다..." 


-토마스 만 Thomas Mann, "토니오 크뢰거 Tonio Kroeger"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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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os M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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