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다음 이야기는 이런 것이었다. 옛날 미시시피 강변에 담소아 (膽小兒)와 학빈(鶴彬)이라는 두 아이가 살고 있었다. 담소아는 그 이름과 달리 담이 큰 아이였다. 즐겨 도당을 만들어 우두머리가 되고, 성경(聖經)의 교리에 깊은 회의를 품고 앙앙불락하였다. 이 때는 전쟁도 없었던 때였기 때문에 생활은 지루했다. 한편 학빈, 학빈(鶴彬) 이 아니라 학빈(虐貧)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그를 학대했고 몹시 가난하게 살고 있었다. 어머니는 어떻게 된 영문인지 없었다. 그래서 그는 마을에 와서 아이들과 노는 것이 집에 있는 것보다 좋았다. 두 아이는 늘 같이 어율렸는데, 마을 사람들은 이 두 아이의 풍운아로서의 기질을 눈치채고, 자기 자녀들이 그들과 사귐으로써 현 사회체제에 대해 불온한 개혁사상을 가지게 될 것을 염려하였다.
담소아는 아이들을 영솔하고 해적놀이를 하는 동안 대인물들이 별 수 없이 맛보게 되는 경험을 겪게 되는 것이었다. 소인들은 거사의 중요한 대목에서 수령을 배반하는 것이다. 거사란 다름이 아니라 해적놀이였다. 담소아는 이 놀이 속에 그의 동포의 근본적 존재 양식을 직관하였던 것이다. 나이프, 밧줄, 폭동, 빼았은 보물의 맛- 거기에는 용기와 지혜, 모험과 진취, 삶의 기쁨과 투쟁의 장쾌함이 있었다. 의적(義賊)이니 하는 병적인 명분을 붙이지도 않았다. 재물 때문이라면 누구나 죽이는 것이었다. 눈썹 하나 까딱 안하고. 그는 이와 같이 자기 부하들을 훈련시키려 했는데 뜻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정착생활에 나약해진 해적들은 브르조와가 돼 있었던 것이다. (브르조와란 小人의 佛譯인데 여러 뜻으로 사용된다- 作者註.) 그래서 그의 해적단은 비운을 맛보게 되었다.
바다에서 웅도를 펴지 못한 그는 로빈훗에 되기를 결심하였다. (로빈훗은 임꺽정에 해당하는 義賊- 作者註.) 그리고 이번에는 그 동지로 묘령의 가인을 택하였다. 마을에는 아무도 들어가보지 못한 동굴이 있었느데 그는 그 속에 보물이 숨겨져 있으리라는 전설을 듣고 있었다. 그런데 담소아는 동굴에서 이상한 인물을 발견하고 그 뒤를 밟았다. 그 인물은 자꾸 달아났다. 담소아는 담대하게 뒤를 쫓았다. 동행한 가인이 그 불가함을 들어 만류하였으나 담대한 담소아는 굽히지 않았다. 급하게 쫓겨서 더 피할 수 없이 된 그 인물은 달아나면서 애원하였다.
"나를 쫓지 말아 주시오. 나를 보면 당신은 불행해질 것이오."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기승한 담소아의 귀에는 그것이 잔꾀로 들렸다. "빨리 네 모습을 드러내라 이놈아." 이것이 담소아의 대답이었다. 가인은 또 한 번 만류했다.
"소첩이 듣건대 군자는 위험을 가까이 안한다 하였고, 인외(人外)의 이(異)를 넘보지 않는다 하였는데 낭군은 깊이 살피소서."
이같이 말하였다. 담소아는 한번 크게 웃고 "이 몸이 아직 천지간에 두려운 것을 모르는데 어찌 이 기회를 놓치리요." 이같이 말하고 쫓기를 더욱 급히 하니 마침내 그 인물은 힘이 진하였음인지 동굴의 벽에 낯을 가리고 뛰기를 멈추었다. 담소아는 쾌히 웃으며 덮치어 놈의 덜미를 잡아 일으키니 이목구비가 모두 없는 달걀귀신이었다.
동굴에서 돌아온 후로 담소아는 몸져 눕기를 여러 날에 병은 쾌하였으나 사람이 달라졌다. 매사에 조심스러워지고, 지난 날의 호쾌히 놀던 온갖 놀이를 경망스럽다 하여 물리치고 교회에 부쩍 마음을 두어 목사의 총애를 받기에 이르렀으며, 이리하여 판사 (아마 判書의 誤傳일 것임-作者註)의 여식인 예의 동굴모험시의 동반 가인을 아내로 맞아 복된 일생을 마쳤다 한다.
한편 학빈은 동지의 이같은 변모에 탐탁치 못한 마음 누를 길 없어
"담소아는 참으로 담소아여."
,라 하였는데, 이는 벗의 이름을 두고 비꼰 말이 분명했다. 그 후 학빈도 돈있는 과부와 인연을 맺어 학빈(虐貧)을 면한 처지가 되었는데, 사람들이 이르기를 "그 아이들 성명에 얽히는 팔자는 갈 데 없는 것이여" 한다. [...]"
-최인훈, "西游記"(1971) 중.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것, 그것을 만났는가. (0) | 2010.08.07 |
---|---|
생활하고 싶은가. (0) | 2010.07.01 |
어쩌면 고답적인. (0) | 2010.06.19 |
그 패턴 (0) | 2010.06.18 |
독특하다고 생각하는가. (0) | 2010.06.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