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다음 이야기는 이런 것이었다. 옛날 미시시피 강변에 담소아 (膽小兒)와 학빈(鶴彬)이라는 두 아이가 살고 있었다. 담소아는 그 이름과 달리 담이 큰 아이였다. 즐겨 도당을 만들어 우두머리가 되고, 성경(聖經)의 교리에 깊은 회의를 품고 앙앙불락하였다. 이 때는 전쟁도 없었던 때였기 때문에 생활은 지루했다. 한편 학빈, 학빈(鶴彬) 이 아니라 학빈(虐貧)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그를 학대했고 몹시 가난하게 살고 있었다. 어머니는 어떻게 된 영문인지 없었다. 그래서 그는 마을에 와서 아이들과 노는 것이 집에 있는 것보다 좋았다. 두 아이는 늘 같이 어율렸는데, 마을 사람들은 이 두 아이의 풍운아로서의 기질을 눈치채고, 자기 자녀들이 그들과 사귐으로써 현 사회체제에 대해 불온한 개혁사상을 가지게 될 것을 염려하였다. 
담소아는 아이들을 영솔하고 해적놀이를 하는 동안 대인물들이 별 수 없이 맛보게 되는 경험을 겪게 되는 것이었다. 소인들은 거사의 중요한 대목에서 수령을 배반하는 것이다. 거사란 다름이 아니라 해적놀이였다. 담소아는 이 놀이 속에 그의 동포의 근본적 존재 양식을 직관하였던 것이다. 나이프, 밧줄, 폭동, 빼았은 보물의 맛- 거기에는 용기와 지혜, 모험과 진취, 삶의 기쁨과 투쟁의 장쾌함이 있었다. 의적(義賊)이니 하는 병적인 명분을 붙이지도 않았다. 재물 때문이라면 누구나 죽이는 것이었다. 눈썹 하나 까딱 안하고. 그는 이와 같이 자기 부하들을 훈련시키려 했는데 뜻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정착생활에 나약해진 해적들은 브르조와가 돼 있었던 것이다. (브르조와란 小人의 佛譯인데 여러 뜻으로 사용된다- 作者註.) 그래서 그의 해적단은 비운을 맛보게 되었다.
바다에서 웅도를 펴지 못한 그는 로빈훗에 되기를 결심하였다. (로빈훗은 임꺽정에 해당하는 義賊- 作者註.) 그리고 이번에는 그 동지로 묘령의 가인을 택하였다. 마을에는 아무도 들어가보지 못한 동굴이 있었느데 그는 그 속에 보물이 숨겨져 있으리라는 전설을 듣고 있었다. 그런데 담소아는 동굴에서 이상한 인물을 발견하고 그 뒤를 밟았다. 그 인물은 자꾸 달아났다. 담소아는 담대하게 뒤를 쫓았다. 동행한 가인이 그 불가함을 들어 만류하였으나 담대한 담소아는 굽히지 않았다. 급하게 쫓겨서 더 피할 수 없이 된 그 인물은 달아나면서 애원하였다. 
"나를 쫓지 말아 주시오. 나를 보면 당신은 불행해질 것이오."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기승한 담소아의 귀에는 그것이 잔꾀로 들렸다. "빨리 네 모습을 드러내라 이놈아." 이것이 담소아의 대답이었다. 가인은 또 한 번 만류했다.
"소첩이 듣건대 군자는 위험을 가까이 안한다 하였고, 인외(人外)의 이(異)를 넘보지 않는다 하였는데 낭군은 깊이 살피소서."
이같이 말하였다. 담소아는 한번 크게 웃고 "이 몸이 아직 천지간에 두려운 것을 모르는데 어찌 이 기회를 놓치리요." 이같이 말하고 쫓기를 더욱 급히 하니 마침내 그 인물은 힘이 진하였음인지 동굴의 벽에 낯을 가리고 뛰기를 멈추었다. 담소아는 쾌히 웃으며 덮치어 놈의 덜미를 잡아 일으키니 이목구비가 모두 없는 달걀귀신이었다.
동굴에서 돌아온 후로 담소아는 몸져 눕기를 여러 날에 병은 쾌하였으나 사람이 달라졌다. 매사에 조심스러워지고, 지난 날의 호쾌히 놀던 온갖 놀이를 경망스럽다 하여 물리치고 교회에 부쩍 마음을 두어 목사의 총애를 받기에 이르렀으며, 이리하여 판사 (아마 判書의 誤傳일 것임-作者註)의 여식인 예의 동굴모험시의 동반 가인을 아내로 맞아 복된 일생을 마쳤다 한다. 
한편 학빈은 동지의 이같은 변모에 탐탁치 못한 마음 누를 길 없어 
"담소아는 참으로 담소아여."
,라 하였는데, 이는 벗의 이름을 두고 비꼰 말이 분명했다. 그 후 학빈도 돈있는 과부와 인연을 맺어 학빈(虐貧)을 면한 처지가 되었는데, 사람들이 이르기를 "그 아이들 성명에 얽히는 팔자는 갈 데 없는 것이여" 한다. [...]"


-최인훈, "西游記"(1971)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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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그대의 영광은 어디에 있는가? 바빌론이여? 
지금은 어디 있는가?
그 무시무시한 느부갓네살과 용맹한 다리우스와 
그리고 그 유명한 시리우스는?
지구가 큰 힘으로 움직여 그들이 사라져 간 것처럼
명성은 그대로 남아 있으나 이들은 썩어 갔도다. 
호사스럽던 율리아여, 궁정은 지금 어디 있느뇨? 
카이사르는 떠났도다!
그대 온 세상보다 더 거칠고 위대하던 카이사르여. 
[...]
마리우스와 물욕을 모르던 파브리키우스는 지금 어디에?
어디로 갔는가, 
파울루스의 그 고귀한 행동과 기억할 만한 행적은?
마왕 필리피카의 불길한 소리는 어디에? 
키케로의 천상의 소리는?
시민을 위한 평화는 어디 있는가? 
모반자들에 대한 카토의 노여움은?
레물루스는 지금 어디로 갔는가? 
로물루스는, 또 레무스는 어디에?
지난날의 장미는 이름뿐, 단지 그 이름뿐. "


- 베르나르 드 물레, '세상에 대한 경멸에 대해'
Bernardi Morlanensis, "De contemtu Mun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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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개 일반적인 패턴은 이러하다.
신혼의 단꿈에 젖은, 교육을 많이 받은 행복한 젊은 부부가 함께 보금자리를 꾸민다.
이들의 보금자리는 대개 비좁은 셋방에서 시작된다.
이들은 이제 돈을 모을 수 있음을 깨닫는다.
둘이 살아도 비용은 혼자 살 때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돈을 모아서 아이들과 함께 살 수 있는 꿈의 보금자리를 사겠다고 결심한다.
그래서 맞벌이를 하며 직장 생활에 전념한다.
두 사람의 수입은 늘기 시작한다.
그리고 수입이 늘면서..

... 수입이 늘어가게 된 두 사람은 이제 꿈의 보금자리를 사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새집이 생기면 이른바 재산세라는 세금이 또 붙는다.
이어서 두 사람은 새 차를 사고, 새 가구와 살림살이를 사서 새집을 단장한다.
그러다 어느 날 일어나 보니 갑자기 부채 부분이 은행 융자와 카드 빚으로 꽉 차 있다.

두 사람은 이제 <쥐 경주> 함정에 빠지는 것이다.
곧이어 아이가 태어난다.
두 사람은 더 열심히 일한다.
이런 과정이 되풀이된다. 수입이 늘면서 세금도 는다. 소위 말하는 과세 표준이다.
우체부가 신용 카드를 배달한다. 두 사람은 그것을 사용한다. 쓸 때는 기분이 좋다.
대출 회사는 전화를 걸어 그들의 최대 <자산>인 집이 가치가 올랐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상계 대출>을 제안한다.
두 사람의 신용 상태가 아주 좋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회사에서 대출을 받아 신용 카드 빚을 갚음으로써 고율의 소비자 대출을 해소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라고 얘기한다. 게다가 주택 융자금의 이자는 세금 감면의 대상이다. 두 사람은 그렇게 한다. 그들은 고율의 신용 카드 빚을 갚는다. 그러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이제 신용카드 빚이 없어진 것이다. 그들은 이제 소비자 대출을 주택 융자로 돌렸다. 주택 융자금 상환 기간은 30년이기 떄문에 당장의 지출은 줄어든다. 아주 잘한 일인 것 같다.
이웃 사람이 전화를 걸어 같이 쇼핑을 가자고 제안한다. 세일 기간이라는 것이다. 돈을 절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두 사람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절대로 아무 것도 안 사면 돼. 그냥 구경만 하면 되지 뭐" 하지만 혹시 모르니까 신용 카드를 찾아 지갑에 넣는다...

... <쥐 경주>에 빠진 사람들의 삶은 이런 것이다. 수입 증가와 함께 지출도 늘어서 자산에 투자할 수가 없다.
그 결과 융자금과 카드 빚과 같은 부채는 자산보다 훨씬 많게 된다
... 중산층은 계속해서 재정적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이들의 주요 수입은 임금에서 나오며, 임금이 높아지면 세금도 높아진다.
그리고 임금이 늘어나면 같은 비율로 지출도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쥐 경주>라는 말이 성립된다.
이들은 <주택>을 자신의 주요 자산으로 여기면서 수입이 나올 수 있는 자산에는 투자하지 않는다.
... 다행히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뮤추얼 펀드를 사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투자 증가는 미국 주식 시장의 엄청난 반등을 낳았다.
갈수록 더 많은 뮤추얼 펀드가... 인기를 얻는 것은 그것이 안전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이런 종류에 투자하는 부류는 열심히 일해서 세금을 내고 융자금을 갚느라 정신이 없다.
이들은 또 아이들의 학자금과 카드 빚도 갚아야 한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투자하는 법을 공부할 시간이 없다.
그래서 이들은 펀드 매니저의 전문성에 의지한다.
이들은 <재산 분산화>의 교리를 믿게 된다. 즉, 안전하게 살라는 것이다. 위험성을 피하라는 것이다.

... 정말로 비극적인 것은 초기에 돈에 대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에 일반적인 중산층이 위기에 봉착해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안전하게 사는 이유는 돈에 관한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투자할 자본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부채만 잔뜩 있고 수입을 창출하는 진짜 자산은 없다.
대개 이들의 유일한 수입원은 직장에서 받는 급여이다. 이들의 삶은 전적으로 고용주에게 의존한다.
그래서 정말로 <평생의 기회>가 찾아왔을 때, 이런 사람들은 기회를 잡을 수가 없다.
이들은 다시 안전하게 살 수 밖에 없다.
열심히 일만 하면서 세금만 잔뜩 내고 빚에 허덕이기 때문이다. "



-로버트 기요사끼, 샤론 레호트;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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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안을 하나 할께, 게르다. 

태도 (Moral) 에서도 기체의 운동 이론과 똑같은 일이 진행된다고 가정해보자구. 

모든 것이 규칙없이 혼란스럽게 날아다니고 각자가 원하는대로 하겠지. 

하지만 여기서부터 실제로 생겨나는 것은 여기서 생겨날 리가 전혀 없다고 여겨지는 바로 그것이라구. 

희한할 정도로 일치하고 있어! 그러니까 특정한 양의 이념들이 현재 혼란스럽게 날아다니고 있다고 가정해보자구. 

그것들은 가장 개연성있는 어떤 중간값을 내놓겠지. 그것은 아주 서서히 자동적으로 움직이지...

이 모든 것에서 우리의 개인적, 개별적 움직임은 전혀 중요하지 않지. 우리는 오른쪽 아니면 왼쪽으로, 높거나 아니면 낮게 , 신식 아니면 구식으로 또는 대략 아니면 용의주도하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어. 

그것은 중간값과는 아무 관계도 없지. 신과 세계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그것이지 <우리>가 아니라구!"

-로베르트 무질 Robert Musil,


"특성없는 남자 Der Mann ohne Eigenschaften", 2부, 103장. 


"... 정신적으로 활동적인 젊은이는... 쉬지 않고 사방으로 그의 사상들을 보내지. 

그러나 그의 주변에서 반향을 일으킨 것만이 다시 그에게 되돌아와 응집되며, 

그 밖의 모든 다른 사상은 공간 속에 흩어져 사라져 버리는 거야!... 

(이리하여) 시간이 흐르면서 어떤 사람의 평범하고 비인격적인 생각은 저절로 강화되는 반면 비범한 생각들은 사라지면서, 

그래서 기계적 결합처럼 안전하고 점점 더 평균적으로 되기 때문에 우리는 거의 누구나 할 것 없이 결국 평범한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 같은 책, 2부, 2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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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re is nothing very odd about lambs disliking birds of prey, but this is no reason for holding it against large birds of prey that they carry off lambs. And when lambs whisper among themselves, “These birds of prey are evil, and does not this give us a right to say that whatever is the opposite of a bird of prey must be good?,” there is nothing intrinsically wrong with such an argument, though the birds or prey will look somewhat quizzically and say, “We must have nothing against these good lambs; in fact we love them; nothing tastes better than a tender lamb.”

To expect strength will not manifest itself as strength, as desire to overcome, to appropriate, to have enemies, obstacles, and triumphs, is every bit as absurd as to expect that manifest itself strength…”
“… Small wonder, then, that the repressed and smoldering emotions of vengeance and hatred have taken advantage of this superstition and in fact espouse no belief more ardently than that it is within the discretion of the strong to be weak, of the bird of prey to be lamb. Thus they assume the right of calling the bird of pretty to account for being a bird or prey. We can hear the oppressed, downtrodden, violated whispering among themselves with the wily vengefulness of the impotent, “Let us be unlike those evil ones. Let us be good. And the good shall be he who does not do violence, does not attack or retaliate, who leaves vengeance to God, who, like us, lives hidden, who shuns all that is evil, and altogether asks very little of life-like us, the patient, the humble, the just ones. “Read in cold blood, this means nothing more than; we weak ones are, in fact, weak. It is a good thing that we do nothing for which we are not strong enough. But this plain fact, this basic prudence, which even the insects have has tricked itself out in the grab of quiet, virtuous resignation, thanks to the duplicity of impotence: as though the weakness of the weak, which is after all his essence, his natural way of being, his sole and inevitable reality, were a spontaneous act, a meritorious deed… It makes possible for the majority of mankind, that is, the weak and oppressed of every sort, to practice the sublime sleight of hand which gives weakness appearance of a choice and one’s natural disposition, the distinction of merit.”


-An extract from "the Genealogy of Morals"
by Freidreich Nietzche.






譯. 아기양들이 맹금류를 싫어하는 것은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양을 물어간다는 이유로 맹금류를 미워할 수도 없다. 아기양들이 “이 맹금류들은 사악하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맹금류와 반대되는 것은 무조건 좋은 것이라고 말할 권리가 있지 않는가?” 라고 자기네들끼리 속삭일 때, 그 주장이 뭐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맹금류들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우리는 이 양들을 미워하지 않는다. 

사실, 우리는 양들을 너무 사랑한다. 부드러운 양보다 맛있는 것은 없다.”

힘이 힘으로써, 즉 정복하고, 약탈하고 싶은 갈망과 적과 장애물과 승리에 대한 욕심으로 드러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그것은 약함이 강인함으로 자신을 표현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만큼이나 무식한 기대이다. […]
그렇다면 지금까지 억제해야 했던, 그 욱신거리는 보복과 증오의 감정들이 이 미신들을 기반으로 강한 자가 자기 마음대로 약해질 수 있다고, 맹금류가 순한 양이 될 수 있다고 무엇보다 뜨겁게 믿으며 매달리는 것은 그렇게 놀랄 일이 아니다. 그 믿음을 통해 그들은 맹금류에게 그들이 맹수라는 것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할 자격을 자기 자신에게 부여한다. 우리는 억압받고, 실패하고, 패배한 자들이 힘없는 자들의 영악한 복수심 속에서 수군거리는 것을 들을 수 있다. “우리는 저 사악한 사람들처럼 되지 말자. 우리는 좋은 존재들이 되자. 그렇다면 좋은 사람이란 폭력을 쓰지 않는 사람, 공격도 보복도 하지 않는 사람, 복수를 신에게 넘기는 사람, 우리처럼 숨어서 살면서 모든 악을 싫어하는 사람, 그리고 인생에서 아주 조금만을 바라는 사람들이다. 우리처럼 참을성 많고, 겸손하고, 정의로운 자들이다. .” 냉정하게 읽어보면 이 말은 이렇게 해석할 수 밖에 없다: “우리 약한 자들은 실제로 약하다. 그리고 우리가 너무 약해서 애써 피할 수 없는 일을 안 하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다.” 하지만 무능함의 이중적인 성격을 빌어서 조용하고 정의롭게 단념하라는 외피 속에 심지어 벌레들도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이 조심스러운 강령은 기실 이런 뜻이다. 즉 결국 그의 본질, 그에게 허용된 유일한 존재 양식이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그 현실이 사실은 자발적인 선택이자 칭찬받을 만한 행동이라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나약하고 핍박받는 인류의 대부분은 나약함을 자발적인 선택으로, 자기에게 주어진 본능을 영예롭게 성취한 것으로 착각하게 되는 탁월한 속임수를 스스로 쓸 수 있게 된다. 


프리드리히 니체, "도덕의 계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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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nda Feanáró Nossëo
 
Nai kotumo ar nilmo, kalima Vala
thauza ar poika, Moringothonna,
Elda ar Maiya ar Apanóna,
Endóressë Atan sin únóna,
ilar thanyë, ilar melmë, ilar malkazon sammë,
osta ilar harwë, lau Ambar tana,
só-thauruvá Fëanárollo, ar Fëanáró nossello,
iman askalyá ar charyá, ar mi kambë mapá,
herá hirala ar haiya hatá
Silmarillë. Sí vandalmë ilyai:
unqualé son antávalme mennai Aurë-mettá,
qualmé ten' Ambar-mettá! Quettalman lasta,
Eru Ilúvatar! Oiyámórenna
mé-quetamartya íre queluvá tyardalma.
Ainorontessë tirtassë lasta
ar lma-vandá enyalaz, Varda Manwë!
 


페아노르의 맹세
 
적이건, 친구이건, 빛나는 발라건,
악하건 선하건 모르고스의 피조물이건
엘다든, 마이아든, 나중에 오는 자 -
중간계에 태어나게 될 인간들이든,
규율도, 사랑도, 칼의 맹약도,
공포나 위험, 운명 그 자체도,
누구든 실마릴을
숨기거나 간직하거나 손을 대거나
찾아내 지니거나 멀리 던져버린 자를
페아노르와 페아노르의 친족으로부터 보호해줄 수 없으리라
우리 모두 맹세하는 바이라.
우린 그에게 시간의 끝까지 죽음을, 세상의 끝까지 비탄을 주리라!
당신께선 이 말을 들었다,
모든이의 어버이 에루여!
우리의 행동이 실패할 때, 영원히 어둠의 운명을 내리소서.
신성한 산이 이를 들은 증인이며
우리의 서약을 기억할 것이오, 만웨와 바르다여!
 


-J.R.R. Tolkien, ed. Christopher Tolkien,
The Silmarillion,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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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발의 잉에, 잉에보르크 홀름! 높다랗고 뾰족한 여러 겹의 고딕식 아치들을 이룬 지붕 아래에 우물이 있던 저 광장 가(街)에 살던 의사 홀름의 딸! 그녀가 바로 토니오 크뢰거가 열여섯 살 때 사랑했던 사람이었다. 

어쩌다가 그렇게 되었던가? 그전에도 이미 그는 수백 번이나 그녀를 보아왔었다. 그런데 어느 날 저녁, 그는 그 어떤 불빛 아래에 있던 그녀를 보았던 것이다. 그녀는 어느 친구와 얘기를 나누면서 오만한 투로 깔깔 웃으면서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한 손을- 유별나게 섬세하지도 않고 유별나게 고상하지도 않은, 흔히 볼 수 있는 소녀의 손을- 뒷머리께로 가져갔는데, 이떄 그는 반투명한 천으로 된 그녀의 소매가 어깨 쪽으로 흘러내려 그녀의 팔꿈치가 드러나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 그러나 그는 그다지도 많은 상심과 그리움으로 가득 차 있는 자신의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왜, 무엇때문에 그는 여기에 와 있는 것일까? 왜 그는 자기 방 창가에 앉아 슈토름의 "임멘호(湖) Immensee" 를 읽으며 때떄로 눈을 들어, 해묵은 호두나무가 육중하게 가지 소리를 내고 있는 저녁 무렵의 정원을 내다보고 있지 않은가? 그곳이 그가 있을 자리인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야 춤을 추면서 마음껏 활기와 재치를 부리라지! 아니, 아니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있을 자리는 여기다. 여기서 그는 자신이 잉에의 근처에 있음을 알 수 있으니까.... 너 금발의 잉에여! 웃고 있는 네 길쭉한 푸른 두 눈이라니! "임멘호 (湖)" 를 읽지 않고, 그런 작품을 쓰려는 시도를 결코 하지 않는 사람만이 너처럼 그렇게 아름답고 명랑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것이 슬픈 일이지!...
... 내 너희들을 잊은 적이 있었던가? 하고 그가 물었다. 아니, 결코 없었다! 너 한스도 잊은 적이 없고, 너 금발의 잉에도 결코 잊은 적이 없어! 정말이지 내가 작품을 써서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바로 너희들이었어. 그리고 내가 박수갈채를 받을 떄, 난 남몰래 내 주위를 살펴보곤 했지, 그중에 너희들이 참석해 있나 하고. 한스 한젠, 네 집 정원 문 앞에서 약속한 대로 너 이제 (쉴러 Schiller 의) "돈 카를로스"를 읽었느냐? 읽지 마라! 난 너한테 더 이상 그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외로워서 우는 왕이 너에게 무슨 상관이겠니? 넌 우울한 시 나부랭이를 보다가 네 밝은 눈을 흐리게 하거나 어리석은 꿈에 잠기게 해서는 안 된다. 너처럼 되고 싶구나! 다시 한번 시작하여, 너처럼 올바르고 즐겁고 순박하게, 규칙과 질서에 맞게, 하느님과 세계의 동의를 얻으면서 자라나서, 악의없고 행복한 사람들한테 사람을 받으면서, 잉에보르크 홀름, 너를 아내로 삼고, 한스 한젠, 너와 같은 아들을 두고 싶구나! 인식해야 하고 창작해야 하는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저주로부터 벗어나 평범한 행복 속에서 살고 사랑하고 찬미하고 싶구나! 다시 한번 시작한다? 그러나 아무 소용도 없으리라. 다시 이렇게 되고 말 것이리라...
... 지나간 며칠 내내 그는 이 감정의 훈향(薰香)과 쓰린 자극을 아련하게 느껴왔는데, 이제 이 감정이 다시금 그를 찾아와 한껏 달콤한 억지를 부리는 것이다. 이게 무슨 감정이더라? 동정? 애정? 질투, 자기 경멸? <숙녀들의 작은 물레방아!> 금발의 잉에여, 너는 웃었지? 내가 <숙녀들의 작은 물레방아> 를 추어 그다지도 비참한 웃음거리가 되었을 때 너는 날 비웃었지? 그런데 이제 내가 제법 유명한 사람이 된 오늘에도 넌 날 비웃겠느냐? 그렇다. 너는 그럴 것이다. 그리고 그러는 것이 또 너무나도 댱연하다. 
설령 내가 아홉 곡의 교향곡과 (쇼펜하우어 Schopenhauer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와 (미켈란젤로 Michelangelo의) "최후의 심판"을 순전히 혼자서 이룩해 내었다손 치더라도, 너는 영원히 비웃을 권리가 있다...
... 그렇습니다, <삶은> 정신과 예술의 영원한 대립 개념으로서 우리들과 같은 비정상적인 인간들에게는 피비린내 나는 위대성과 거친 아름다움의 환상으로 나타나거나 비정상적인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정상적이고 단정하고 사랑스러운 것이야말로 우리들이 동경하는 나라이며, 그것이 바로 유혹적인 진부성 속에 자리잡고 있는 삶인 것입니다! 친애하는 리자베타, 세련되고 상궤를 벗어난 것, 악마적인 것은 궁극적 목표로 삼고 그것에 깊이 열중하는 자는 아직 예술가라 할 수 없습니다. 악의 없고 단순하며 생동하는 것에 대한 동경을 모르는 자, 약간의 우정, 헌신, 친밀감, 그리고 인간적인 행복에 대한 동경을 모르는 자는 아직 예술가가 아닙니다. 평범성이 주는 온갖 열락 (悅樂)을 향한 은밀하고 애타는 동경을 알아야 한단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 예술가들 자신은 그 무엇인가 인간 외적인 것, 비인간적인 것이 되지 않으면 안 되며, 우리들 자신은 인간적인 것과 이상하게도 동떨어지고 무관한 관계에 빠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지요... 말하자면 그 어떤 인간적 빈곤화와 황폐화를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어쩄든 확실한 것은 건강하고도 힘찬 감정은 몰취미하다는 사실입니다. 예술가가 인간이 되고 느끼기 시작하면 그는 끝장입니다..." 


-토마스 만 Thomas Mann, "토니오 크뢰거 Tonio Kroeger"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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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os M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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